[매거진스토리] 드라이플라워아티스트 김해정 대표
[매거진스토리] 드라이플라워아티스트 김해정 대표
  • 김경산 기자
  • 승인 2019.01.21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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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이표'드라이플라워로 블로그 유명인사
'꽃으로 세상을 치유'
드라이플라워 정의를 새롭게 내리기도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김해정 대표(사진 가운데)와 김은정 한국드라이플라워아카데미 원장(사진 왼쪽)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김해정 대표(사진 가운데)와 김은정 한국드라이플라워아카데미 원장(사진 왼쪽)

“작업과정에서 저나 수강생이나 스스로 ‘치유’되는 경험을 하곤 해요. 드라이플라워의 큰 매력이자 이 일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인터넷 블로그에서 ‘양양이표 드라이플라워’로 널리 알려진 김해정(39) 대표의 드라이플라워 예찬이다. 김 대표가 주목받는 이유는 생화(生花)와 조화(造花)를 아우른 새로운 ‘드라이플라워’ 분야를 개척했다는 평가 때문이다. 

김 대표가 내린 ‘드라이플라워’ 정의는 ‘꽃(생화)을 건조해도 색과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꽃’ 이다. 드라이플라워는 생화가 지닌 한 주 남짓한 지속력을 1년 넘게 연장시켜 쉽게 시들지 않는 획기적인 꽃이다. 일반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불과 수년 전.

드라이플라워는 짧은 이력에도 불구하고 가정과 사무실, 카페 실내 인테리어는 물론 결혼식, 발표회, 전시회 등 크고 작은 행사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어릴 적부터 무언가 새로운 걸 만드는 일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드라이플라워를 하기 전에 생화로 여러 장식도 해 보았지만 뭔가 한계가 있는 것 같고, 일종의 결핍 같은 것을 느껴 좀 더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 대표가 본격적으로 드라이플라워를 시작한 시기에는 전문 학원이나 강사를 찾기 힘들었다. 결국 김 대표 스스로 연구를 거듭해 드라이플라워 정의와 작업방법을 새롭게 썼다.

“중요한 것은 꽃이죠. 절화한 지 얼마 안 된 생화를 가능한 빠르게 포밍(forming) 작업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흔히 생화를 화병에 꽂아 한 주 남짓 감상한 뒤 말린다거나, 절화된 시기가 오래된 품질이 떨어진 꽃을 사용하는 차원이 아니다. 꽃의 본래 형태와 색감을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자체 개발한 보존액을 사용해 물올림을 한 뒤 거꾸로 매달아 건조한다. 드라이플라워는 사용자의 관리방식에 따라 최소 6개월~ 1년 이상 생동감이 유지될 정도로 생화와 비교할 수 없는 지속력을 가졌다.

제작과정은 얼핏 단순해 보여도 생화를 고르고, 생화마다 지닌 고유한 모양과 특성을 살려 사전에 기획한 분위기를 연출하기까지 섬세한 손작업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단순 취미에서 전문작품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의 퀼리티는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수준에 관계없이 드라이플라워를 제작하는 과정 속에 수강생, 강사 대부분 마음의 안정과 치유의 느낌을 공유한다.

드라이플라워 콘텐츠로 한류를 꿈꾼다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2~3만 원치 꽃을 구입해 드라이플라워를 만들어 5만원에 팔았다. 조금씩 판매량이 늘었다. 어느 날 수강료를 내고 드라이플라워를 배우고 싶다는 문의가 왔다. 이를 계기로 대전 유성구 구암동에 있는 친구 화실을 빌어 3평짜리 작업실을 열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현재의 대전 유성구 노은동으로 공간을 넓혀 이전했다.

“단순하게 판매만 할 수 없었어요.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수강생이 늘어나는 거예요. 중국에 서 건너 온 20대 여성은 6개월 가까이 작업실 부근에 방을 얻으면서까지 배워 가기도 했어요”

서울, 부산, 대구에서도 찾아왔다.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했다. 드라이플라워&데코 취미반, 전문가반 과정 아카데미를 잇따라 열었다. 여기에 민간자격증 발급기관 등록도 마쳤다. 이후 기업체 특강과 방송 출연, 언론인터뷰도 이어졌다. 드라이플라워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처음으로 <그림, 꽃으로 그리다> 도 출간했다.

김 대표는 드라이플라워를 콘텐츠로 한 새로운 한류 꿈을 꾸고 있다. “저보고 외국 어디에서 배웠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가끔 있어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할 당시에는 국내 어디에도 드라이플라워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곳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나 봐요. 저는 당당히 말해요. ‘드라이플라워 원조는 한국입니다’ 그러면 모두 깜짝 놀라요”

드라이플라워 아티스트로서 김 대표는 나름의 확신이 있다. 해외에서도 드라이플라워 기술을 자유롭게 배우러 오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수강생 다수는 20~40대 여성이 많다. 여기에 50~60대 중년층, 경력단절 여성부터 전문직 종사자, 젊은 남·녀까지 다양하다. 이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창업을 했거나 해당 직종에 취업했다. 김 대표는 핸드 메이드 제품을 높게 평가하는 유럽 쪽에서 이 일을 시작하면 사업적으로도 유망할거라며 웃음을 보였다.

김 대표에게 잊지 못할 추억도 많다. 지난 2016년 10월 어느 날, 군산 선유도에서 임권택 영화감독 부부를 모델로 한 리마인드웨딩 스타일링을 담당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부부가 더욱 돋보이게 드라이플라워로 만든 화관, 부케, 반지 등을 스타일링했다. 이틀 연속 이어진 행사 내내 참석자들 모두 웃음꽃을 피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 일은 영원히 기억될 장면이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꽃과 떨어져 살수 없잖아요. 드라이플라워는 이제 시작이에요. 드라이플라워는 생화의 수려함과 생동감, 조화의 유연함, 다양성을 고루 갖추고 있어요. 무엇보다 쉬이 시들지 않는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해 둘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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