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대부분 신설학교 전학생 많아, '학교폭력' 우려 해마다 되풀이
사이버 언어폭력과 저연령화 추세
학부모 높은 교육열, 학생 과잉보호로 이어지기도

 

새 학기 학부모, 아이들 학교부적응과 학교폭력 걱정 

최근 세종시 2생활권에 입주한 A(41)씨는 올해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들과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딸 전학을 앞두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교육여건이 전에 살던 곳보다 좋을 것 같아 이사했지만 ‘아이들이 낯선 동네에 새로운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하면 밤잠을 설친다.

새 학기를 앞두고 세종시 학부모 사이에 걱정이 커졌다. 자녀의 ‘학교부적응’과 ‘학교폭력’ 우려 때문이다. 신도시 소재 학교는 성남고를 제외하면 아무리 길어야 6~7년의 역사밖에 되지 않는다. 올해도 6개 학교가 새로 문을 열어 관내 초· 중·고교 수는 모두 88개교. 학생 수는 4만5천여명에 달한다. 전국에서 전학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학기 초마다 각 학교 교사들은 학생생활지도에 애를 먹는다. 대체로 원만히 적응하지만 소위 ‘짱’을 가리는 서열싸움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곤 한다. 신도시내 처음 개교했던 모 고교의 경우 읍면지역 전학 학생들과 외지 전학 학생 간 잦은 다툼으로 교사들이 학생지도에 큰 어려움을 겪은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세종시교육청과 경찰은 세종시 학교폭력 발생 빈도를 분석할 때 전국 평균 이하로 크게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학부모과 일선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은 이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5년간 세종시 관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자치위원회’) 심의건수를 보면 2013년 39건, 2014년 59 건, 2015년 99건, 2016년 133건, 2017년 146건으로 나타났다. 학생수 대비 (폭력)사안 발생율은 2016년 0.42%로 전국 평균 0.52%를 밑돈다. 이 기간 중 단순 폭행이 281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협박(언어폭력), 성폭행(성추행), 명예 훼손·모욕, 따돌림, 금품갈취, 사이버폭력, 상해 순으로 집계됐다.

지역 특수성 반영

교사들은 세종시 학교폭력이 지역 특수성을 드러낸다고 입을 모은다. 첫째로 신설학교와 전입학생이 대부분인 세종시만의 특수한 상황이다. 학생들은 대전, 천안, 청주, 공주 등 충청지역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에서 모인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문화 차이가 두드러진다. 사소한 갈등이나 관계 어려움이 학교폭력으로 비화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학생간 갈등과 관계 어려움을 학부모들이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예전 학교에서는 학교폭력으로 다루지 않고 화해와 중재로 처리될 수 있는 사안도 이곳에서는 학교폭력으로 신고한다. 세종 이주 가정은 새롭게 시작해 보겠다는 의욕이 크다. 직장 이전이든 주거지 이전이든 생활 터전을 옮긴 다수 부모들이 세종에서 새 출발한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의욕의 상당 부분은 교육열 과잉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아이가 가해 또는 피해 학생으로 나타날 경우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사소한 다툼이후 학생끼리는 화해하고 서로 잘 지내고 있는데도 부모들은 감정적으로 계속 대립하며 갈등을 유지하는 사례도 나타난다. 가해자라는 입장을 잘 받아들이지 않고 ‘자치위원회’ 소집을 요구하거나 끊임없는 이의제기와 민원을 일으키기도 한다. 여기에 전체 교사의 약60% 가량이 교사연수 5년 미만인 신규교사라는 점도 핸디 캡으로 작용한다. 학생지도 경험이 적은 교사들이 학교폭력 대처와 학부모 민원처리에 고통을 호소하고 휴직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세 번째는 과거 살던 지역에서 피해자 입장이던 학생이 세종에서는 반대로 가해학생으로 변하는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자신이 당한 피해 유형과 패턴을 잘 알고 있는 학생이 세종시에서는 상대 학생에게 그대로 되갚음을 하는 것이다.

세종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이기섭 경위는 “상당수 언어폭력 가해자 부모들이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화해한 뒤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함에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교육청과 시청, 경찰서 등 관련기관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하거나 자치위원회를 보복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학생문제가 부모 간 감정싸움으로 비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기적으로 4~5월 중요

교사들은 학생들이 첫 대면하는 3월보다 4~5월이 중요한 시기라고 말한다. 서로 성격을 파악하고 또래끼리 무리를 짓게 되면서 노골적인 왕따나 은근한 따돌림이 발생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단체 카톡방이나 SNS상에 언어폭력 현상이 나타나고 심할 경우 패드립(가족욕)과 성드립(음란표현)까지 거침없이 쏟아낸다. 이때 아이들이 느끼는 상처가 크다. 그럼에도 피해신고를 꺼린다고 한다. 보복이 두려울 뿐만 아니라 고자질하는 애로 낙인돼 다른 학생과의 정상적인 관계도 어려워질까봐 걱정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피해를 당할 때는 어떤 형태로는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교사나 부모에게 상담과 대화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너무 작은 신호여서 주변에서 알아채지 못하거나 어른들이 의도적으로 축소 해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갑자기 말수가 적어지거나, 돈을 필요이상으로 많이 달라고 하거나, 특별한 이유 없이 성적이 크게 떨어지는 경우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아이가 전에 살던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학교와 가정에서 관심과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언어폭력, 성폭력 증가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꼽는다. 먼저 개인과 가정, 주변 환경이다. 개인요인으로는 공감능력이 낮거나 친사회적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다. 가정요인은 부모로부터 문제행동에 대한 처벌이 없거나 정당한 이유 없는 부모의 훈육과 강압적인 태도, 학대 등이다. 환경 요인은 학교내 왜곡된 또래 문화와 위험한 사회 환경이다. 기본이 무시되는 사회, 술 권하는 사회, 폭력이 묵인되거나 미화되는 사회, 왜곡된 성문화는 모두 학생폭력 원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폭행이나 금품갈취는 감소 또는 증가율 정체를 보이지만 성폭력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1년 학교폭력으로 붙잡힌 학생은 2만1957명에서 2016년 1만2805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반면 성폭력은 같은 기간 44명에서 1364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교육부가 집계한 ‘자치위원회’ 성폭력심의건수도 2012년 652건에서 2015년 1842건으로 4년간 2.8배 증가했다. 대부분 스마트폰를 이용한 몰카와 음란물 유포 행위 증가 때문이다. 특히 SNS활용이 늘면서 음란물 노출에 무방비 상태인 점도 한몫하고 있다. 여기에 학교폭력 당사자들의 저연령화 추세도 교육 관계자들의 우려를 깊게 한다.

아이들 갈 곳이 없다

세종경찰서 이기섭 경위는 “세종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 PC 방, 코인노래방을 제외하면 평소 갈 만한 곳이 없다’며 불만이 많다”고 지적했다. 학교내외의 스포츠 클럽이나 복컴, 도서관, 청소년수련관 등도 있지만 아직까지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이나 관련 기관간 협업체계는 미흡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학교밖 아이들의 경우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학교부적응이 동시에 일어나는 데도 대책마련은 하세월이다.

■ 학교폭력의 정의

‘학교폭력’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 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 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2조>

▶학교폭력 처리 절차

- 학교폭력 접수(책임교사) → 사안조사(사안처리전담기구) →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 학생징계조정위원회 (교육청), 지역대책위원회(시청), 행정심판위원회(교육청) → 중앙행정심판위원회(국민권익위) → 행정소송

-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처분에 이의가 있을 경우 피해학생은 시청 지역대책위원회에, 가해 학생(8호,9호 대상)은 교육청 학생징계조정위원회에 재심 신청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

1.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 사과 2. 피해학생 및 신고·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 행위의 금지 3. 학교에서의 봉사 4. 사회봉사 5.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 교육이수 또는 심리치료 6. 출석정지 7. 학급 교체 8. 전학 9. 퇴학처분

가정폭력 피해 아이를 위한 임시 숙소는 있어도 장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면 천안시 소재 관련 기관으로 인계하며, 가출 청소년은 공주나 청주로 옮겨주는 실정이다. 쉼터나 상담센터 운영예산 역시 턱없이 부족해 운영효과를 거두기 어렵고, 시설 종사자들의 이직도 빈번하다. 일선 학교에서 시행하는 청소년 프로그램은 일회성, 이벤트성 행사에 머물러 지속적인 효과를 얻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교육청 김원영 장학사는 “학교폭력은 예방이 중요하다” 며 “가정에서 기본적인 인성을 갖추도록 교육하고, 학교는 정규 교과 과정에서 학교폭력을 다룰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학생도 엄연한 지역공동체 일원이므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청소년을 위한 인프라와 프로그램 확대를 위한 투자를 과감히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은 학교만이 아닌 가정과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상호차이 존중과 인정 필요

지난 23일 오전 세종시교육청 대강당. 청소년범죄 전담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부산가정법원부장판사의 ‘학교폭력의 이해와 예방’ 강연이 열렸다. 천 판사는 학교폭력은 가정폭력, 아동학대와 뿌리를 같이 한다며 가정과 학교, 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야만 학교폭력을 없앨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웨덴 사례를 들었다. 스웨덴은 학교에서 어느 한 아이가 욕을 하면 바로 조사에 들어가 우발적인 상황에서 비롯된 일인지, 지속적인 상황인지 맥락을 파악해 오랫동안 반복된 일이라면 퇴학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고 소개했다. 사소한 차이를 꼼꼼히 들어다 보면 그 속에 감춰진 큰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 판사는 학교폭력이 학생들간 상호 관계성을 갖고 지속성을 띠며, 다수에 노출되는 공연성을 가질 때 심각한 상황을 맞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인 상호간 차이를 존중하고 인정과 배려심을 길러야 한다’며 가정과 학교, 사회공동체가 각자의 영역에서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부모는 아이에게 끊임없이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학교는 성적경쟁보다 상호 관계맺기 교육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잘못한 사람을 처벌함으로써 죄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방식이 아니라 피해자 원상복귀를 위한 최대한의 정신적, 물질적, 관계적 행동을 사회공동체 모두 이해하도록 사회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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