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출신 故 장욱진 화백의 삶과 예술세계
11월말까지 국립세종도서관 전시회, 12월 추모 행사

‘이 사람을 보라. 한 화가가 있다. 그 이름 장욱진. 기이한 일생을 살면서 특출한 그림을 남긴 사람. 술을 벗삼고 해와 달, 까치와 참새를 많이도 그린 예술가. 그는 누구인가. 외통수에다 장기 한 수를 놓고 일생을 버텼다. 나이를 물으면 “일곱살이지.’하였고, 심플이라는 단어를 입버릇처럼 외쳐댔다. 세상 물결을 저만치 놔두고 자신의 길만을 향해서 양보 없이 살았다.’

- 최종태 著 『장욱진, 나는 심플하다』 中에서

고 장욱진 화백(1917~1990)
고 장욱진 화백(1917~1990)

타고난 화가

故 장욱진(1917~1990) 화백은 세종시 연동면 송용리 출신이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거목(巨木)이다. 맑고 순수한 그림세계로 한국 미술을 대표했다. 장 화백의 부친 장기용 선생은 지역 부농(富農)이었다. 장 화백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까치를 흑과 백으로 단 순화해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타고난 화가였다.

1910년대 후반 남자가 그림을 업으로 삼는 일은 용납되지 않았다. 집안어른들 몰래 다락에 숨어 그림을 그렸다. 10세 되던 1926년 경성사범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주최 ‘전일본소학생미전’에 1등상을 수상하면서 천부적인 재능을 인정받았다.

22세 때 조선일보주최 제2회 ‘전국학생미전’에 <공기놀이>등의 작품을 출품해 최고상과 중등부 특선을 받은 다음에서야 집안에서 그림 그리기를 동의했다. 양정고보를 졸업한 청년 장욱진은 일본 도쿄제국미술학교 서양학과에 입학해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때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해 <소녀>로 입선한다.

1941년 이순경 여사와 혼인해 슬하에 1남4녀를 두었다. 1945년 첫 직장인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에 취직한 뒤 2년 만에 사표를 냈다. 1947년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 등과 함께 결성한 제1회 ‘신사실파 동인전’에 참가하고 이듬해 제2회 전시회에 유화 14점을 출품했다. 신사실파는 ‘사실을 새롭게 보자’라는 주제의식을 지녔다. 신사실파의 철학대로 장 화백은 자연 사물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안에 내재해 있는 근원적이고 정신적인 본질을 추구했다. 그의 작품이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이유다.

6.25전쟁 당시 1951년 고향인 연기군에 내려와 마음의 평온을 되찾은 장 화백은 대표작 <자화상>, <나룻배>, <소녀>를 포함한 수십 점의 주옥같은 그림을 창작했다. 전쟁 직후인 1954년 서울대 미술대 교수로 부임해 제1회 백우회전에 <수하(樹下)>를 출품해 독지가의 이름을 딴 ‘이 범래씨상’을 수상했다. 1956년 제5회 ‘국전’에 이어 제8회 (1959), 제18회(1969) ‘국전’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장욱진 탄생 100주년 기념 공공미술 프로젝트 개막행사
장욱진 탄생 100주년 기념 공공미술 프로젝트 개막행사

독특하고 순수한 세계 표현

44세 되던 1960년 서울대를 사직하고 남양주 덕소 강변가에 작은 아틀리애를 마련해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기 시작했다. 덕소 시기 내내 그는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화풍을 확고하게 다지기 위한 고뇌의 시간을 보낸다. 1964년 반도화랑에서 제1회 개인전을, 1974년 공간화랑에서 제2회 개인전을 갖는다. 1976년 종로구 명륜동 한옥에 화실을 마련하고 한국적인 소재에 몰두하며 <사찰>, <까치집 >, <팔상도>, <가로수> 등을 제작한다. 1979년에는 현대화랑에서 화집을 발간하고 전시회를 열었다. 1981년 충북 수안보 산중에 화실을 짓고 한국적인 풍취가 물씬 배어있는 유화 제작에 몰두했다. 이 시기에 일필휘지의 풍미가 드러나는 먹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1986년 용인으로 이사한 장 화백은 국제화랑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중앙일보가 제정한 예술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장 화백은 유화로 시작해 매직그림, 도자기 그림, 판화, 먹그림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그만의 특유한 조형세계를 구축했다. 심플하고 작은 그의 그림 안에는 가족과 이웃이, 주변의 가축들이, 자연과 함께 세상을 모두 끌어안은 무한대의 우주가 담겨 있다. 독특하고 순수한 세계를 추구했던 장 화백은 1990년 12월 지병인 천식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74세였다.

1998년 장 화백 타계 8주기에 그를 기리는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이 제자와 유족들에 의해 발족했다. 2003년 고향인 세종시(당시 연기군)에 장 화백을 기리는 ‘장욱진선양사업회’(회장 장래열)가 결성됐다. 2014년 경기도 양주시에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 개관했다.

■ 기념행사와 전시회

세종시와 장욱진미술재단 등은 올해 장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와 학술세미나 등을 개최한다.

- 문화브랜드 육성

세종시는 장 화백의 생애와 작품을 지역 대표 문화브랜드로 육성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중이다. 지난 10월11일 최종 보고회를 가졌다. 생가의 문화적 가치를 살릴 수 있는 스토리텔링, 관광연계 프로그램을 마련해 추진할 계획이다.

- 기획전시

장욱진미술재단 주관으로 국립세종도서관에서 10월 7일부터 11월말까지 두 달간 ‘심플하고 무한한 장욱진의 세상’을 주제로 작품전시회를 갖는다. 대표작 <자화상>, <나룻배>등 원화 및 드로잉 작품 50점과 장 화백의 생애자료를 이용한 디지털 작품을 선보인다.

- 추모행사

12월 16일 연동면 생가와 탑비 일원에서 유가족과 제자, 미술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27주기 추모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세종시와 세종시문화재단은 지난 6월 28일 연동면 내판역 인근에서 장 화백 작품을 주제로 한 타일벽화 제막식을 연데 이어 어린이 체험형 북콘서트를 가졌다. KBS는 장 화백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 ‘백년만의 초대’를 지난 5월 방영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11월 4일 미술관 강의실 에서 장욱진탄생 100주년 기념 ‘장욱진의 예술철학과 미술사적 의의’를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세종시문화체육관광과 044-300-3414                                                                         장욱진미술문화재단 031-283-1911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244-2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031-8082-4245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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