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중반 불구 13년간 3400여 건 글 올려
맛집 소개와 여행 후기로 이름 날려
30여년 공직 마감 후 세종에서 제2의 인생 개척

 

“70살 넘은 노인이 무슨 욕심이 있겠어요. 제 솔직한 느낌을 그대로 쓰고 그걸 본 다른 분들이 잘 활용해서 도움이 됐다면 저는 만족해요. … 세종시 발전을 위해 제 경험이 필요하다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 도울 준비도 돼 있습니다.”

세종시 주요 온라인 카페에서 ‘아론할배’는 유명인사다. 여행과 맛집소개에서 타인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다작(多作)을 자랑한다. 13년간 3400여 건에 달한다. 개인 블로그는 운영하지 않고 오직 카페에만 글을 쓴다. 최근에는 지역 주민들의 관심사에 의견을 올린다. 많은 글과 사진 때문에 그의 정체를 의심하는 눈길도 적지 않다.

지난 2월 중순 오후 세종시 모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에서 아론할배를 만났다. 깨끗한 피부에 선한 얼굴, 맑은 눈빛이 인상적이다. 얼굴이 다소 핼쑥해 보였다. 그는 건강이 예전같지 않다며 힘없이 웃었다. 이틀 전 치료차 서울 아산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30분 전에 약속장소에 나와 잡지를 읽는 중이었다고 했다. 2시간여 동안 종이컵에 담긴 물 한잔도 다 비우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냈다. 세종시를 후손들이 자랑스러워할 세계적인 도시로 만드는데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노하우를 전하고 싶다고도 했다. ‘아론할배’ 박영준(73)씨의 공직 생활과 맛집여행 이야기 를 듣느라 날이 까맣게 진 줄도 몰랐다.

‘아론할배’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고향은 청주, 학사장교(ROTC) 6기 출신이다. 행정직 공무원으로는 드물게 도시건설 분야에서 장기간 근무했다. 해외 40여 개국을 다녀왔다. 공무원 재직시 파견 근무했던 일본은 전국을 훑다시피 했다. 지구 북쪽으로는 그린란드, 남쪽으로는 뉴질랜드의 밀포트사운드까지 여행했다. 북극과 남극 가까운 곳도 보고 왔다. 국내는 휴전선 민통선 안쪽 마을을 포함해 행정구역상 면단위 소재지까지 안 거친 곳이 없을 정도다.

- ‘아론할배’란 닉네임이 좀 특이합니다.

"가족 모두 천주교 신자입니다. 손자 세례명이 ‘아론’이어서 저는 당연히 ‘아론할배’죠"(웃음)

- 맛집과 여행 인터넷카페에서  유명인사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글을 쓰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지난 2000년 공직 퇴임후 서울에서 아들이 사는 대전 유성구 노은동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중학교 국어교사로 정년퇴직한 집사람과 한 5,6년 동안 같이 시간 나는 대로 맛집 찾아 차몰고 전국을 누볐지요. 대전 근방 계족산, 갑하산, 수통골은 십 여차례 이상 올라가봤고, 대전 유성장, 신탄진장같은 장터도 많이 다녔습니다. 그런 생활이 좀 지루할 때쯤 아들이 ‘맛집이나 여행 후기 좀 써보라’며 인터넷카페를 소개해 줘서 그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했죠"

- 그동안 얼마나 쓰셨지요?

"3400건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개인 블로그를 만들고 책도 펴내라 했지만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어요. 제 솔직한 느낌을 그대로 쓰고 그걸 본 다른 분들이 잘 활용해서 도움이 됐다면 저는 만족해요. 처음에는 해외여행동호회나 대전맛집 등에 글을 올리다가 1년 8개월 전 세종시로 이사와서는 지역 관심사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 기존 글들을 많이 삭제하셨다고 하는데?

"몇 년 지난 글들 때문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보는 분도 생기고 오해도 있는 것 같아요. 여러 정보들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1년 정도 지난 글은 새로 쓰지 못할 바에야 없애는 게 나을 것 같아 많이 지웠지요. 제가 원래 대단히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해 왔는데 세종시에서 쓴 글들을 다시 보니 공격적으로 변했더라구요. 좀 자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몸도 안좋고..."

- 어떻게 변했다는 말씀이지요?

"일종의 조바심일 수 있죠. 두 가지 면이 있는데 하나는 공직을 지낸 사람으로서의 안타까움입니다. 저는 공무원 시절 자부심과 사명감이 정말 컸어요. 제 업무에 관한 전문성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져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일했죠.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해결해 내야 직성이 풀렸어요. 다른 하나는 세종시를 정말 세계 일류 도시로 만들고 싶다는 문제의식이죠. 저는 훌륭한 도시 건설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의식과 생활방식이 함께 일류가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어요. 그런데 이사 와서 주변을 보니 ‘이건 좀 아니다’싶은 일들이 많이 눈에 띄어요. 제 솔직한 생각과 나름대로의 대안이라고 쓰다 보니 그게 누군가에게는 공격이 되기도 하고, 사물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던 거예요. 좀 서글플 때가 있어요. 이 나이에 얼마나 대단한 일 해보겠다고 이러나 싶기도 하고..."

- 도시계획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제 전문이라면 전문이죠. 친환경도시를 논의하려면 영국의 밀턴케인즈나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런던의 하이드파크, 뉴욕센트럴 파크 사례도 반드시 참고해야 합니다. 풍광도 빼어나 문화 관광지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시민들의 중요한 소통공간이자 휴식처로 중요한 역할을 하죠. 저는 이 모든 곳을 다 가봤고 보고서도 썼습니다"

- 평소 글쓰기를 좋아하셨나요?

"제가 학사장교(ROTC) 6기 출신입니다. 군에서 정훈장교 그리고 휴전선 부근 부대에서 연락장교도 했구요. 제대후 공직에서는 민방위 교육, 국정홍보, 기획, 감사, 도시계획 업무까지 아주 다양한 일을 했지요. 자랑은 아니지만 글쓰기는 어느 정도 기본이 돼있지 않았겠어요?"(웃음)

- 그래도 인터넷 글쓰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글 쓰고, 사진 정리하는데 두 시간씩 걸렸어요. 키를 잘못 눌러 다시 두 시간 더 작업하고. 시행착오가 좀 있었죠. 요즘은 20~30분이면 다 해결돼요. 마음만 먹으면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 에피소드가 많지요?

"책으로 몇 권을 낼 수 있죠. 경남 삼천포에 갔다가 길을 잃어 한 경찰관의 도움을 받아 고마운 마음에 글을 썼는데 그 내용이 지방경찰청장에 보고돼서 경찰관이 표창을 받았어요. 태국에 여행 갈 계획을 세운 어느 분이 제 소개대로 여행지며 숙박집, 심지어 가이드까지 그대로 따라 해서 정말 즐겁게 다녀왔다고도 해요. 저는 음식점의 경우 맛도 맛이지만 주인이나 직원들의 말씨, 몸가짐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여행지는 지명, 위치, 연락처가 정확해야 하구요. 그래서 명함 한 장 소홀히 할 수 없어요. 저 개인적인 시각에서 쓴 글이지만 좋게 봐주시고 나이에 관계없이 친구처럼 연락하는 분들이 전국에 많아요"

- 악플은 없었나요?

"왜 없겠어요. 어디 가서 공짜밥은 안 먹는데 천 번에 한두 번 정도 예외가 있죠. 집사람하고 둘이 다니니까 돌아가신 자기 친정 부모님 생각나서 밥값을 안 받고 대접해 드리겠다는 식당 주인이 있었어요. 저도 끝내 사양하지 못하고 그 내용을 그대로 올렸더니 ‘그것봐라. 공짜 밥먹으면서 광고해주고 있지 않느냐’며 댓글이 달려요. 예전에 쓴 제 맛집 후기보고 같은 식당을 갔던 어느 분은 '음식 맛도 형편없고 값도 다르더라'며 항의성 글을 올렸어요. 생각해보니 시간이 지나면 식당 주인도 바뀔 수 있고, 메뉴나 가격이 다를 수도 있겠더라구요"

- 사모님이 배경인물로 자주 등장하시던데요?

"무슨 노인네가 그렇게 여행을 많이 다니냐, 진짜 다녀오기는 했냐, 정말 할배 맞냐고 의심하는 글들이 있길래 집사람과 같이 인증샷 찍어서 올렸죠. 덕분에 집 사람 얼굴도 꽤 많이 알려졌어요"

- 여행을 얼마나 다니셨죠?

"해외로는 40개 국 넘게 다닌 것 같아요. 1년에 네 번 나간 적도 있어요. 북극 근처의 그린란드, 남쪽으로는 뉴질랜드 밀포트사운드까지 가봤어요. 국내는 휴전선 경계 마을을 포함해 전국 면단위 이상은 거의 다녀 본 것 같아요"

- 건강도 좋아야 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제가 직접 차를 운전하고 다녔어요. 비용은 저와 집사람 둘이 직장 다니며 저축한 거, 퇴직금 받은 거 쓰고 다녔죠. 아들 둘이 있는데 하나는 대덕연구단지 연구소에 근무하고, 작은 아들은 방송국 간부로 퇴직했죠. 다들 분가해서 나름대로 잘 사고 있어요. 서로 줄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어요"(웃음)

- 세종시에 애정이 많으신 것 같아요.

"저는 군장교 생활에 이어 공직에서 평생을 지냈어요. 군인과 공무원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최우선 책무로 생각하죠. 제 평생 그런 자세랄까 각오가 몸에 배어 있다고 여겨요. 세종시청 소속 공무원들이 업무나 의식면에서 수준이 높아져야 하고, 주민들은 일류도시 시민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졌으면 해요. 저는 여생을 세종에서 마칠 겁니다. 제 손자들이 계속 살 도시인데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제 공직 경험을 필요로 한다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 도울 준비도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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