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트다운 들어간 행정수도 개헌, 국회와 국민여론 공감 선결과제

“개헌을 통해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는 수도이전에 대해 다수 국민이 동의해주지 않을 것 같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8월 20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 전해지면서 세종지역 여론이 발칵 뒤집혔다. 이 총리는 “국민 마음속에 행정기능의 상당 부분이 세종으로 가는 것까지는 용인하지만 수도가 옮겨가는 걸 동의해 줄까 의문”이라고 했다.

시민단체들이 곧바로 성명을 내고 총리실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행정수도완성 세종시민대책위원회 (상임대표 맹일관 최정수)는 “문재인 정부 첫 책임총리인 이 총리가 행정수도 개헌을 위해 앞장서도 모자랄 판에 논의 자체를 포기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직무유기에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이 총리는 26일 “(행정수도에) 부정적인 발언을 한 적이 없다” 며 “국회의원과 국민들의 의견 분포가 중요하다는 얘기”라고 직접 해명했다. 이 총리는 평소 신중한 언행으로 이름나 있다. 20여년 기자 생활과 4선 국회의원, 전남지사직을 수행하며 쌓은 해박한 지식과 탄탄한 논리, 뛰어난 정무감각은 어느 정치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올해 국회대정부질문과 답변에서 입증했듯이 ‘촌철살인’, ‘우문현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와 같다.

이런 총리가 ‘행정수도=세종시’ 개헌 여정에 의문문을 던진 것이다. 추후 해명에서는 국회의원과 국민을 분리해 말했다. 이 총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9월 13일 자유한국당 이장우 의원의 대정부질문에 “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기는 것과 광화문 대통령시대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답변해 다시 한번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뒤늦게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진화에 나서 대통령과 여당의 ‘행정수도=세종시’ 개헌의지를 재차 밝혔지만 여전히 의심의 불씨는 사그러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세종시의 행정수도 추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모두 지난 대선에서 행정수도 추진을 공약했다. 이 때문에 세종시민들은 내년 6월 개헌국민투표가 시행될 경우 행정수도 명문화는 확실할 거라는 기대가 높았다. 현실은 이 총리 예상처럼 간단치 않다. 

‘국회와 국민여론의 벽’ 넘어야  

행정수도 개헌완성 해법은 세 가지 지점에서 출발한다. 첫째, 헌법에 반드시 수도규정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수도 성립의 또 다른 전제인 청와대와 국회이전을 어떻게 매듭짓는가이다. 셋째, ‘수도’ 규정을 다수 국민이 동의해 줘야 한다는 점이다.

첫째와 둘째 항목은 지난 2004년 헌법재판소 판결내용이다. 수도이전은 헌법에 규정해야 한다는 판결 때문에 이를 피할 뾰족한 묘안 찾기가 어렵다. 개헌안에 ‘수도는 서울, 행정수도는 세종’이라는 문구를 넣 자는 의견이 가장 먼저 부상했다. 다음은 ‘수도에 관한 사항은 법률에 규정한다’는 내용이었다. 행정수도 명문화 개헌안에는 현실적으로 이 두 가지 의견중에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와 국회이전 해법 역시 논의만 무성하다. 청와대와 국회 동시이전은 서울시민들에게 ‘수도’ 지위 상실감을 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신중한 행보가 예상된다. 실제 각종 여론 조사에서도 동시이전 거부감이 만만치 않았다. 전면이전보다는 일부이전 쪽에 무게가 실리는 형국이다. ‘청와대 제2집무실과 국회분원 설치’는 헌법에 수도 규정을 신설하지 않고도 정치권 의지만 있으면 실현 가능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세종시 지역정치권에서는 현실론을 들어 ‘국회분원’설치만 결정돼도 실질적인 행정수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분위기다. 이미 지난 10월 행복도시특별법 개정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행정안전부 세종 이전 길이 열렸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개헌 추진이 불투명한 마당에 국회분원 설치는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으로 진일보한 성과”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국회분원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하느냐에 따라 행정비효율에 이어 새로운 입법비효율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차라리 확실하게 본원 이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장 큰 관문인 ‘국민의 동의’, 즉 여론의 벽도 만만치 않다. 올들어 실시된 행정수도 관련 국민 여론조사는 일단 긍정적이다. 대체로 세종시의 행정수도 규정에 공감한다. 문제는 두 가지다. 압도적 찬성이 아니라는 점과 수도권 여론이다. 일부 조사에서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근소한 차이로 반대가 앞선다. <여론조사 박스기사 참조>

지방선거와 개헌국민투표 동시 실시는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만 수도지위 논란이 벌어질 경우 수도권과 비수도권 여론이 나뉠 수 있다. 모처럼 맞은 절호의 개헌정국에서 권력구조 개편보다 표심을 더 흔들 수 있다는 정치권의 분석이 많다. 자칫 개헌 추진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 27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여의도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4차산업 혁명 아시아 창업 중심도시로 만들자”고 제안한 것은 의미가 크다. 본격적인 국회이전 논의 물꼬를 튼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서울시장 후보들이 잇따라 출마선언을 하면서 새로운 제안을 내놓을지 아니면 행정수도 반대 의견을 내놓을지 관심이 증폭되는 대목이다.

개헌 추진 동력 감소는 불안요소

개헌 추진동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분위기는 불안 요소다. 내년 개헌의 핵심은 권력구조개편이다. 권력구조 개편은 선거구제 변경과 맞물려 있다. 현재 국회개헌특별위원회(위원장 이주영)와 함께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굴러가는 곳이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원혜영)다. 정개특위 논의 핵심은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수는 나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한 지역구에서 2명 이상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이다. 각 당마다 입장이 서로 다르게 때문에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당선 직후 청와대에서 열린 5당 원내대표 회담에서 “선거구제 개편 등이 같이 논의된다면 다른 정부형태나 다른 권력구조도 선택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거구제 개편→권력구조 변경→개헌'으로 이어지는 개헌 논의 순서를 언급한 것이다. 쉽게 타협할 수 없는 개헌 전제 조건이 놓여진 셈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10월 11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개헌을 지방선거에 덧붙여 투표하는 것은 옳지 않고, 지방선거 이후에 개헌 일정을 갖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개헌안이 가결되려면 재적 의원 2/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훨씬 넘어 116석을 확보한 한국당이 반대하면 개헌은 불가능하다. 홍 대표가 지방선거 동시 개헌을 반대하는 데에는 나름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지난 1월 출범한 국회헌법개정특위가 제시한 개헌 일정은 제대로 진행되기 어렵다. 개헌특위는 내년 2월까지 특위 차원의 개헌안을 마련하고 3월중 개헌안을 발의한 뒤 5월24일까지 개헌안의 국회 본회의 의결절차를 마무리하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하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동의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지난 22일부터 재개된 개헌특위 전체 회의에서 헌법 전문을 비롯해 기본권, 지방분권, 경제민주화 등 개헌 내용 전반에서 여야가 부딪치고 있다. 여야가 그런대로 합의했다는 지방분권 분야도 광역자치단체장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는 지방분권 로드맵이 나오자 국회의원들의 견제심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뒷말이 비등하다.

여야 정치권은 가장 핵심 사항인 권력구조 논의에서는 전혀 진전을 이루지 못한 상태다. 대통령중심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로 바꿀 것인지 어느 당도 당론을 내놓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치권 주변에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추진은 물 건너갔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비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권력구조 개편 합의없는 개헌은 본래의 개헌 목적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야 합의된 부분만 우선 개헌하자는 의견은 일단 힘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방분권과 행정수도, 양 날개로 대국민 공감 얻어야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개헌 협상이 전격적으로 진전될 수 있다. 여야 대화폭이 지금보다 더 넓게 열려야 한다. 정계개편 논의도 잠재변수다. 12월 중 지방분권관련 정책에 행정수도 개헌안이 제시될 수도 있다. 최정수 행정수도완성 세종시민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지방분권과 행정수도를 양 날개로 지방과 수도권 상생방안을 마련해 대국민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획기적인 지방분권과 행정수도는 양 날개와 같다” 며 “더 이상 서울과 수도권 중심의 국가 경영으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국회와 국민여론의 벽을 어떻게 넘을 것인지에 개헌성패가 달려 있다.

김경산 기자 magazine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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