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자전거로 호수공원 한 바퀴 달려보세요”

세종 신도시에서 한두리대교를 건너 대전방향으로 1km쯤 도로를 달리다 보면 오른편에 ‘자전거’라는 빨간 글씨의 LED 간판이 눈에 뛴다. ‘신달자’ 매장을 알리는 표시다. 신달자는 ‘신나게 달리는 자전거’의 줄임말이다. 이곳에 자리 잡은 지 2년 째다. 다짜고짜 김석주(44) 대표에게 좋은 자전거 고르는 요령을 물었다. “사용 용도와 쓸 수 있는 비용만 말씀해 주시면 저희 직원이 최적의 자전거를 추천해 드립니다. 고객 몸에 맞게 피팅(fitting)도 해 드려요. 그 자전거가 가장 좋은 자전거입니다.(웃음)"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다. 

사회적기업 성공 꿈을 향해 달린다

그는 ‘성공한 사회적기업’을 꿈꾼다. 사회적기업으로 기업 상장까지 이루고 싶다는 포부도 있다. 신달자는 지난해 11월 세종시 ‘지역형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됐다. “평소 즐겨 타던 자전거로 사업을 키워 사회에 도움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오래 근무하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그를 아무런 연고 없는 세종까지 이끌었다. 김 대표는 부산출신이다. 대학에서 해군ROTC를 지원해 졸업 후 항해과 장교로 11년간 근무했다. 군인이 되고 싶었던 어릴 적 꿈은 이뤘지만 직업군인으로서의 끝이 보였다. 근무지를 새로 발령받을 때마다 가족을 데리고 이사 다니는 일도 힘들었다. 첫 아들이 초등학교 6년 동안 다섯 번 전학했다.

35살 되는 해, 소령 진급을 앞두고 전역 신청서를 냈다. 해군에서 제공한 취업프로그램에 1년간 참여하면서 ‘행정사’업무를 소개 받았다. 재무설계사 시험도 봤다. 그해 전국 응시생 5천 명 중 8등으로 합격했다. ‘열심히 하면 잘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붙었다. 2008년 봄 부산시청 옆에 행정사 사무실을 열었다. 인터넷 민원상담에 적극 나섰다. 나름대로 일이 꽤 들어왔다. 3년 만에 부산 사무실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 대구로 옮겼다. 그는 나이든 행정사들이 잘 취급하지 않는 행정심판에 주력했다. 행정심판은 행정관청의 행정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다. 대부분 돈없고 힘없는 사람들이 행정사를 찾았다. 변호사 사무실문을 두드리는 여유 있는 이들과는 다른 부류였다. 군 생활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사회의 그늘진 곳들이 보였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자신의 권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즈음 ‘사회적기업’이란 말을 접했다. 점점 마음이 끌렸다. 관련 강의도 듣고 사업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평소 즐겨 타던 자전거를 이용해보자는 생각까지 미쳤다. 이익 창출과 함께 좋은 일자리를 만들면 우리 사회 어려운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세종시에 큰 매력을 느꼈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새 도시가 건설 중이었다. 무엇보다 잘 조성된 자전거길이 마음에 들었다. 자전거 인프라를 이보다 잘 구축한 도시도 없을 것 같았다. 사업적으로 발전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2013년 가을 아내와 세 아이를 이끌고 세종으로 이주했다. 창업 전까지 서울소재 자전거정비학원에서 기술을 배웠다.

첫마을에서 ‘신달자’표 자전거로 인기몰이

“야외수업 나온 초등학생들이 지나가는 저를 알아보고 ‘신달자 아저씨다’며 소리쳐 불러요. 손을 막 흔들고. 제가 무슨 유명 연예인도 아닌데. 그 정도로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죠”

2014년 2월 한솔동 첫마을 6단지 상가 뒤편 1층에 1인 점포를 열었다. 아내가 가게에 나와 청소하고 전화를 받아줬다. 판매 여부와 관계없이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들이 고마웠다. 친절하게 대하고 나름대로 정성과 최선을 다했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제품과 서비스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칭찬의 말을 건넸다. 동네 아이들도 무척 따랐다. 첫마을 아이들이 타는 자전거 대부분이 ‘신달자’표라고 이름났다.

창업의 기쁨은 잠시였다. 고장 난 자전거도 아닌데 ‘하자있다’며 무조건 반품해 달라는 고객은 점잖은 편에 속했다. 막말까지 하는 사람도 생겼다. 양 손에 묻은 기름이 마를 날이 없고, 손가락 끝은 갈라져 쓰라리기도 했다. 문 닫고 돌아앉아 남몰래 눈물을 훔친 적도 있다. 그래도 제법 손님이 들었다. 욕심이 생겨 아름동에 분점을 냈다. 겨울철이 다가오자 자전거 판매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 11월부터 매출이 뚝 떨어지더니 12월, 1,2월까지는 월세 내기도 벅찼다. 궁리 끝에 아름동 분점을 내놓고 한솔동 점포도 정리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금남면 발산리에150평 규모의 창고형 매장을 새로 열었다. 찾아오는 고객만큼이나 출장서비스도 증가했다.

“사회적기업으로 성공하려면 규모를 키워야겠더라고요. 당연히 투자도 더 했죠” 직원 5명을 모두 이사로 참여하게 하고 4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했다. 취급 브랜드도 20여개로 늘렸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일본자전거부품업체 시마노 서비스센터 지정도 받았다. ‘한번 판매한 제품은 평생 A/S를 책임진다’는 매장 운영 방침은 자전거에 관한 한 최고의 경쟁력을 지키겠다는 김 대표의 의지였다.

사회적기업 안정돼야 일자리 창출 효과 높아

“사회적기업은 이윤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내실이 튼튼한 기업이 돼야 공익 기여도 잘 할 수 있죠” 그는 공익 기여 우선순위로 취약계층 일자리 마련이 시급하다고 여겼다. 비정규직이나 일용직 같은 취약한 고용 구조에서 양질의 서비스가 제대로 나올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김 대표는 신달자의 미래를 사업다각화에 걸고 있다. 유통(판매)이나 수리뿐만 아니라 직접 생산까지 구상 중이다. 푸드트럭처럼 자전거로 소형매장을 운반할 수 있는 카고(Cargo)바이크같은 몇 가지 아이템도 이미 계획했다. 공공 자전거 사업 외에 최근 중국에서 큰 열풍을 몰고 있다는 공유 자전거 사업도 검토하고 있다.

그는 정부의 사회적기업 지원제도에 아쉬움을 표했다. 공공부문의 경우 단순히 입찰제로 경쟁시키는 것은 사회적기업 지원 취지에 맞지 않다는 얘기다. 이윤을 얻기 위해 사업을 따내는 개인 기업과는 달리 사회적기업은 일자리 유지가 핵심이기 때문에 최저가 경쟁으로는 기업을 지속시킬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만 하고 정부나 지자체에서 관심을 두지 않으면 기업 생존은 정말 어렵습니다. 사회적기업 생존률이 높아야 일자리가 늘어납니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많다. 먼저 시민들이 자전거를 많이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크다.

“자전거도시 세종 아닙니까. 세종만큼 자전거길이 좋은 곳도 없습니다. 자전거로 건강지키고, 가족애도 깊어지고. 기자님, 이번 주말 자전거로 세종호수 한 바퀴 돌아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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