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자 헌신으로 지역사랑방 역할
초기 개관과 지속 운영 위한 지원체계 절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의지 중요

신도시 아파트 단지내 작은도서관이  개관 초기 어려운 운영상황에서도 지역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신도시 아파트 단지내 작은도서관이 개관 초기 어려운 운영상황에서도 지역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김경산 기자 magazinesj@naver.com

# 1 지난해 3월 문을 연 범지기마을 10단지 푸른작은도서관. 젊은 자원봉사자 20여명이 최근 육아 분담을 위해 힘을 뭉쳤다. 도서관 공간을 활용한 공동육아프로그램 ‘북적북적’을 운영한다. 매주 수 요일 오전 두 시간 동안 단지내 커뮤니티시설에서 엄마와 아이들과 함께 모여 그림그리기와 교구를 이용한 놀이를 즐긴다. 숲 체험과 인형극, 탐방프로그램도 이들이 주도하는 중요 프로그램이다. 집 안에서 외롭게 지내던  입주민들이 밖으로 나와 서로 소통의 시간을 갖고 친밀감을 높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2 올 겨울 전의면 소재 전의도래샘작은도서관에 40대 남자가 방문해 글씨가 큰 그림책을 매주 대출해 갔다. 임재숙 관장이 ‘누가 읽는 책이냐’고 묻자 ‘나이 드신 어머님이 집안에서 무료 해 하셔서 그림책이라도 보시라고 빌려간다’고 했다. 임 관장은 외출이 어려운 어르신을 모시는 아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가을마다 도서관이 개최하는 ‘책잔치한마당’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어울려 즐기는 동네 축제로 성황을 이룬다.

세종시 ‘작은도서관’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수행 중이다. 신도시의 경우 전국에서 이주한 시민들이 작은도서관을 중심으로 교류하며 친교의 기회로 삼는다. 공동육아는 물론 아파트 생활과 지역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작은도서관마다 평균 3~4개 교육특화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독서모임을 기본으로 그림교실, 길위의 인문학, 동화구연, 영어 인형극, 논술 강좌, 휘호 백일장, 보드게임이 펼쳐진다.  등 내용도 다양하다. 주민센터 강좌나 각종 동호회 모임도 활발하지만 작은도서관은 젊은 엄마들이 중심이 된 자원봉사자들의 열정에 크게 힘입고 있다.

작은도서관 설립 기준은 비교적 간단하다. 바닥면적 33㎡ 이상, 장서 1천권, 열람석 6석만 갖추면 일단 등록할 수 있다. 여기에 주말을 제외한 평일 5일 기준 하루 4시간 이상 문을 열어야 한다. 500세대 이상 건축하는 공동주택은 의무적으로 작은도서관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범지기마을 10단지 공동육아프로그램은 작은도서관을 중심으로 이웃간 소통기회를 넓여 주었다.
범지기마을 10단지 공동육아프로그램은 작은도서관을 중심으로 이웃간 소통기회를 넓여 주었다.

작은도서관 활성화로 문화복지 향상 기대

지난 7월말 현재 세종시에 등록된 도서관은 46개소. 국립세종도서관과 교육청 도서관, 일부 복컴의 공공도서관 등을 제외한 작은도서관은 40개소(공립6, 사립 34)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신도시 25개, 원도시 15개가 등록했다. 실제 운영 중인 도서관은 50개소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조치원 등 원도시 작은도서관은 예전 ‘마을문고’를 기반으로 지난 2008년부터 ‘작은도서관’으로 변경했다. 이용자 감소로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도서관도 있지만 청소년공부방으로 시작한 ‘전의도 래샘작은도서관’이나 ‘푸른나무작은도서관’(조치원)은 10년 이상 지역밀착형 운영으로 주민과의 유대관계도 튼튼하다.

이에 비해 신도시 도서관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황이다. 2014년에 범지기6단지와 첫마을1단지 작은도서관이 첫 등록을 마쳤다. 나머지 모두 1~3년 내외에 불과하다. 신도시 입주가 계속되면서 도서관 운영을 준비 중인 곳도 여럿이다. 실제 시청에 설립 문의도 이어진다고 한다. 신도시에는 2030 년까지 18만2천세대의 공동주택이 건설된다. 500세대마다 작은도서관이 들어선다고 가정할 경우 단순평균으로 360여 개 설립이 가능하다. 그러나 500세대 미만과 그 이상 단지도 적지 않은 만큼 어림잡아 150개소 이상 가능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추산이다.

작은도서관에 많은 관심과 기대가 쏠리지만 실제 도서관 설립과 운영은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 신도시 아파트 건설사들은 작은도서관 공간만 확보해 놓을 뿐이다. 운영은 입주자 자율이다. 대부분 건설사들은 준공 시점에 열람용 책상과 의자, 박스 포장도 뜯지 않은 전집류 중심의 책 1천권만 넣어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입주자대표회의나 주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1년 이상 빈 공간으로 방치되기 일쑤다.

가재마을7단지 작은도서관 고송미(42) 관장은 지난 2015년 2월 세종시로 이사했다. 도서관 유무가 아파트 선정 기준 중 하나였을 정도로 관심이 컸던 고 관장은 지난해 초 도서관 운영을 위한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문을 보고 관리사무소를 찾았다.

“처음에는 다른 분들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줄 알았는데 그 게 아니었어요. 관리사무소장님이 저처럼 신청서를 낸 몇몇 분들을 모아 놓고 저희들이 운영하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얼떨결에 맡아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서울에서 도서관 봉사활동 경험이 있던 고 관장은 비교적 수월하게 개관을 마치고 계속 운영 중이다. 이런 경우는 상당히 운 좋은 케이스라고 한다. “일부 아파트 경우 도서관 공간이 창고처럼 장기간 방치되니까 주민들이 용도를 변경해서 쓰자고 한대요. 북카페로 운영하는 곳도 있고요.”

운영자 찾기가 어려운 이유는 도서관이 전적으로 입주민의 ‘자원봉사’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10명 이상의 도서관 운영위원과 도서관에서 도서 대출과 반납, 서류정리, 프로그램 운영을 무료로 맡아 해줄 봉사자가 있어야 한다.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작은도서관 운영자 모집 공고를 보고 찾아온 주민과 상담도 나눴지만 자신이 모든 걸 책임지고 나서서 개관과 관리할 생각은 없다고 해 1년 넘도록 문을 열지 못했다고 밝혔다. 도서관 이용은 하지만 내 시간과 비용까지 들여가며 자원봉사로 ‘일’할 뜻이 없다는 것이다.

한 자원봉사자가 범지기마을 5,6단지 작은도서관에서 동화구연을 선보이고 있다.
한 자원봉사자가 범지기마을 5,6단지 작은도서관에서 동화구연을 선보이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아까운 공간을 방치하느니 다른 용도로 쓰자고 계속 의견을 내기도 해 관리소장과 대표자들의 고충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 점은 기존 도서관 운영자들도 인정한다. 범지기마을 10단지 작은도서관 윤나영(43) 관장은 “몇 곳을 제외하고 도서관에서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 무료 자원 봉사자에요. 도서관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최소 하루 4 시간 이상 문을 열어야 해요. 순번을 지정하지만 개인 사정 에 따라 부득이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 자리를 대신 채워야 하는데 사람 찾기가 쉽지 않죠. 봉사라는 선의로만 지속하기 힘든 점이 있어요”

신도시 중에 서도 가장 큰 단지로 손꼽히는 범지기 10단지(1970세대) 역시 도서관 운영위원과 봉사자로 참여하는 주민은 20명 안팎이다. 이보다 입주 규모가 작은 단지들은 보통 3~5명 의 자원봉사자에 의존한다. 운영위원이 자원봉사를 겸해 도서관을 지키는 곳이 상당수다. 시작도 쉽지 않고, 중단 없이 지속하기는 더욱 쉽지 않은 ‘일’인 셈이다.

입주자대표회의 의지 중요

이 때문에 각 도서관마다 최소 1명의 상근자 근무를 위한 지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운영을 활성화하면 할수록 처리해야할 업무들은 늘어나고 일손도 부족하다. 도서관마다 하루 4시간 근무에 맞춘 1명의 실비 책정 여건이 된다면 지금보다 더 다양한 프로그램운영과 주민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외부 지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각 자치단체마다 도서관프로그램 운영과 책 구입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한다. 대신 인건비 지원은 전혀 없다. 세종시의 경우 올해 2억원의 운영비와 1억 원의 도서구입비를 책정했다. 하지만 모든 도서관에 똑같이 지급되지 않는다. 매년 평가를 통해 A에서 F까지 등급 을 매겨 상위 C등급까지만 지원한다.

각 도서관들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아파트 관리규정에 작은도서관 지원 근거가 있다. 범지기 10단지 작은도서관도 이를 바탕으로 입주자대표회의와 적극 소통하고 이해를 구해 월 20만원의 도서구입비와 얼마간의 사무용품을 실비로 지원받고 있다. 첫마을 아파트 등 일부 도서관은 상근자를 두고 약간의 실비를 지급한다. 실제로 ‘세종시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2016.9 개정)’에는 ‘공동체(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자생단체 및 활동 등’ 의 규정을 뒀다. 준칙에 따르면 입주자대표회의 결정으로 잡수입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

아파트 내 작은도서관은 먼저 일정 수 이상의 도서관 운영위원을 모집하고, 이들의 서명을 받아 관리사무소에 자생단체 등록을 마쳐야 한다. 운영위원들이 도서관 운영에 관한 전반 사항을 결정하고 자원봉사자들이 실제 운영을 진행하는 구조다. 이 후 대표회의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규정을 모른 채 지나는 주민들이 상당수에 이를 것이라 게 도서관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신도시 아파트 내 작은도서관들은 단지내 별도 독립공간으로 확보된 곳이 많다.(사진은 가재마을 10단지 작은도서관)
신도시 아파트 내 작은도서관들은 단지내 별도 독립공간으로 확보된 곳이 많다.(사진은 가재마을 10단지 작은도서관)

아예 처음부터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도서관도 있다. 가재마을10단지(436세대)의 경우 2층 도서관 건물 중 1층은 도서관과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스터디룸으로 사용한다. 2층 남녀 독서실 94석은 유료로 전환해 수입금 전액을 도서관 운영에 집행한다. 물론 대표자회의 사전 협의와 결정을 받았다. 도서관 업무를 전담하는 사서 1명을 두고 대부분의 사무처리를 맡긴다. 학생자원봉사자들의 도움도 받는다. 내실있는 도서관 운영으로 아이들과 주민들의 호응도 좋다. 이상진 (54) 관장은 관리사무소장도 겸한다.

비록 일부라고는 하나 입주자 대표들과 주민들의 인식부족은 아쉬운 점이다. 입주자대표 중에는 ‘당신들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만큼 당신들이 알아서 모든 걸 책임지고 하라’며 지원을 회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주민 중에도 ‘굳이 아파트 관리비에서 지원할 의무가 있느냐’며 이의를 달기도 한다. 어렵게 문을 연 도서관에 대해 ‘왜 4시간만 운영하고, 저녁에는 문을 열지 않느냐, 토요일과 휴일도 개관하라’는 주민들의 요구도 적지 않다. 일부 성인 이용자는 아이들이 소란스러워 독서에 방해된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반면에 아파트 건설사와 입주자대표회의, 작은도서관 운영자 간 소통이 잘된 경우도 있다. 기존의 작은도서관 뿐만 아니라 회의실과 세미나실 등을 모두 작은도서관 운영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실내 인테리어와 열람실 책상, 의자, 책장, 도서, 컴퓨터와 대출반납프로그램 등 시설 일체를 도서관 운영자 요구대로 설치한 경우도 있다. 지난 5월 개관한 범지기 5, 6단지 작은도서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개관 초기에도 입주자대표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아파트는 입주 후 3년 이내에 도서관 등록을 할 경우 입주자대표회의가 건설업체에 요구해 시설을 보완해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은도서관으로 행복한 세종시 꿈꿔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도 작은도서관 운영에 열성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참여자들은 ‘보람’을 가장 먼저 꼽았다. 지난 1년 동안 자원봉사자로 활동해온 신화숙(59) 씨는 예전 초등학교 교사 경력을 살린 아이들 독서지도와 부모 고충상담으로 봉사의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남편 따라 강제이주(?) 당하고 1년 간 이웃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일이 없었어요. 도서관 개관 소식 을 듣고 가장 먼저 찾아가 봉사하고 싶다고 했죠. 아이들에게 책도 권하고, 젊은 엄마들의 고충도 들어주고 상담해주면 그렇게들 좋아해요. 저 자신도 행복감을 느끼죠. 단지 안 에서 서로 인사도 나눠요. 이웃과 함께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껴요”

고송미 관장은 “또 다른 자아 발견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전에 살던 곳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하던 분이 도서관에서 만난 엄마들을 모아 뜨개질 모임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 분이 그동안 자기도 모르던 손재주를 발견한 거예요. 뜨개로 강사일을 맡더니 나중에 창업도 하고 정말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업가가 됐어요. 도서관에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성공하신 분이라고 생각해요”

전의도래샘작은도서관이 가을에 여는 '책잔치한마당'은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동네축제로 자리잡았다.
전의도래샘작은도서관이 가을에 여는 '책잔치한마당'은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동네축제로 자리잡았다.

도서관 봉사자 중에는 그림책 놀이나 독서 지도사. 동화구연 관련 자격증까지 따내 전문적으로 나선 사례도 여럿 있다. 윤나영 관장은 “1년 정도 지나니까 주민들이 이해해주 시고 격려의 말씀을 주세요. 도와주시려고 하는 분들도 점점 늘어나요. 기쁘고 보람도 느끼죠. 저희들 때문에 단지내 이웃들이 서로 소통하고 공동의 관심사에 의견을 나눌 기회도 많아졌어요.”

윤 관장은 이런 작은 변화가 아파트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더 나은 세종시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신도시 주민입주는 2030년까지 계속된다. 작은도서관도 현재보다 몇 배 늘어난다. 독서문화 활성화와 주민공동체 역량 강화에도 더 큰 역할이 기대된다. 작은도서관은 단순히 책만 읽거나 빌려보는 장소가 아니라 토론하고 대화하며 학습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변화중이다. 일반 공공도서관이 채우지 못하는 문화복지의 틈새를 얼마든지 채워줄 수 있다.

작은도서관 활동가들의 모임인 ‘세종시작은도서관협의회’(회장 임재숙)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임재숙 회장은 작은도서관 초기 설립과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기존 활동가들의 경험과 외부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협의회 차원의 매뉴얼 작업과 컨설팅 역량 강화도 우선 과제로 꼽았다. “입주자대표회의와 건설사를 대상으로 작은도서관 활 성화를 위한 방안들을 제시할 생각입니다. 아파트 관리규정에 의거해 필수적인 지원도 촉구할 예정이고요. 주민들에게도 적극 홍보해야죠. 물론 시에서도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해 주셨으면 해요. 작은도서관으로 행복한 도시, 작은도서관 특화도시 세종을 위해 지혜와 힘을 모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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