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보다 세종시가 좋아요"
미국인 남편과 딸도 세종시 생활 만족

조기축구회 아침 막걸리 파티에 멘붕 온 남편

“4년 전 축구를 좋아하는 남편이 앞집 어른의 권유로 어느 조기축구회에 나갔어요. 운동 첫날 오전 늦게 들어왔는데 놀란 얼굴이더라구요. 선수들이 이른 아침부터 술을 마신다는 거예요. 휴식시간에 막걸리를 돌린 모양인데 남편은 운동하면서 술 마시는 모습을 처음 봤다는 겁니다. 얼마 뒤에는 선수들이 리그전 치른다며 하루 종일 공차는 모습을 보더니 못하겠다고 그만뒀어요.”

미국인 남편 마크 피크(38)씨, 딸 민아(5)와 세종시 생활 5년째인 김지수(42)씨. 한국과학재단에서 재외과학자 유치업무를 담당하는 김 씨는 초등학교 원어민교사로 일하는 남편을 좇아 세종시로 이주했다. 딸의 미국식 이름을 영국 축구클럽인 ‘첼시(Chelsea)'로 지을 만큼 축구 열성 팬인 남편도 이제는 막걸리 조기축구문화를 이해할 정도로 한국생활에 적응했다. 부산 출생인 김 씨는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하고 미국 인턴십을 거쳐 국내 대기업 통신사에 입사했다. 학업을 위해 일본 연수를 떠났다가 아예 일본 기업에 취업해 9년을 더 머물렀다.

“남편을 처음 만난 곳은 2007년 제가 일본 도쿄에서 다니던 영어학원이었어요. 남편은 신입영어강사로 저보다 늦게 학원에 나왔는데 어린 외모에 젊고 귀엽다는 생각을 했어요. 선생과 학생의 평범한 관계로만 지내다 몇 달 뒤 제가 학원을 그만 두면서 서로 연락할 일이 없었죠. 2년 뒤 페이스북에 가입했는데 자꾸 모르는 사람이 화면에 뜨면서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알려줘요. 궁금하던 차에 마침 마크가 ‘나 혹시 알아요?’하고 메시지를 보냈어요. 알고 보니 예전 학원 선생님인 거예요. 과제 낼 때 썼던 이메일주소 때문에 알게 된 거죠” 페이스북이 인연을 다시 이어줬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 데이트를 즐길 무렵 동일본 지진이 났다. 불안해하는 지수씨를 남편이 든든히 지켜줬다. 결혼을 생각할 즈음 '일본에서 얼마나 더 살아야 하나'싶은 고민이 들었다. 일본이나 미국보다 한국에 나머지 인생을 걸기로 했다. 2012년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은 충남 공주의 초등학교 원어민교사 자리를 구했다. 공주시내 원룸 5층 월세방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런데 몇 달 뒤 그 5층이 불법 증축된 건물로 시청에 적발됐다. 주인이 할 수 없다며 방을 비워달라고 해 급하게 집을 다시 구한 곳이 세종시 첫마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전화위복이 됐지만 그때는 참 어이없었죠. 신혼집을 쫓겨나다시피 나오고, 임신한 배는 점점 불어오고, 아파트 주변은 온통 공사판인데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어요. 인터넷 검색을 하다 ‘세종맘카페’를 알게 됐는데 저랑 비슷한 처지의 분들이 엄청 많더라구요. 서로 얼굴도 모르면서 위로의 말도 해주고 생활에 필요한 정보도 바로 바로 알려 주시고 해서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미국 어느 도시보다 세종이 더 매력적

'남편 고향인 미국에서 사는 게 좋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는 지수씨는 일반인들이 미국에 정착해 사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고 고개를 저였다. “전국민 의료보험이 가능한 한국을 오히려 부러워해요. 시댁이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인데 어린이집 비용을 포함해 아이 한 달 보육비가 백만원 이상 된다고 해요. 맞벌이 부부에게 큰 부담이죠. 직장 의료보험이 있다고 해도, 의료비 자체가 엄청 비싸요. 미국에 사는 지인은 한국에서 치과 치료받는 게 항공료를 부담하더라도 더 싸다고 해요. 세종에 살아보니 집에서 이동하기 편해서 좋아요. 호수공원은 세계 어느 공원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아요. 치안환경면에서도 한국에서 아이 키우고 사는 게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물론 대학입시나 취업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기도 해요”

외국인 남편과 외출하다보면 주변의 특별한 시선을 느낄 때가 많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내가 뭐가 다른가 싶어 불만도 있었지만 이제는 편하게 받아들인다. 남편이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아무래도 주목받는 일이 어색하죠. 저희 부부는 그냥 평범한 세종시민인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 자체는 대부분 의미가 담겨 있지 않다고 봐요. 저 스스로 마음의 여유를 갖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왕이면 당당히 편하게 받아들이는 게 낫다고 여기죠”

길거리나 마트에서 외국인 남편을 둔 한국 사람을 만나면 반가웠다. 하나 둘씩 모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정기 모임을 갖는 부부가 대여섯 커플 된다. 영국, 캐나다, 이탈리아 뉴질랜드, 그리스,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국적도 다양하다. 가족끼리 서로 집에 초대하거나 키즈카페, 대형마트에서 만나 수다를 나눈다.

내년 12월 새 아파트 입주 완전 정착할 터

부부는 5년 만에 아파트 분양권에 당첨됐다. 내년 12월 입주 꿈에 부풀어 있다. 딸도 2년 간 대기 끝에 공립어린이집에 들어갔다. 남편은 세종시내 초등학교로 옮겼다. 수제 맥주를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 맛있는 맥주 맛을 보는 즐거운 시간도 늘었다. 세종시는 지수씨 부부에게 평생을 같이할 도시가 됐다. “한 도시가 이렇게 다이내믹하게 변할 수 있구나 싶어 많이 놀랍죠. 병원처럼 부족한 시설도 있지만 하나하나 건축이 되고 있고. 외국 생활을 경험한 분들도 점차 늘고 있어 대화하기도 점점 더 편해요. 무엇보다 정말 한국에서 제일 좋은 도시가 되고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할 비전이 있잖아요. 이런 멋진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에요.”

저작권자 © 전국도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