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첫마을 벼룩시장 주인공 김형관 씨

2011년 말부터 세종시 '첫마을공동체' 운영을 주도해 온 김형관 씨

 

 

 

 

 

 

 

 

 

 

 

 

 

 

 

 

 

 

 

 

 

 

 

매월 첫째 주와 셋째 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첫마을 벼룩시장. 한솔동 주민센터 옆 생태터널에서 펼쳐지는 ‘나눔과 배려’의 한마당 장터는 도심형 마을공동체의 실험장으로 진행 중이다. 돗자리 하나만 있으면 주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장터는 세종시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았다. 체험활동과 음악회, 전시회가 열리고 강연과 토론이 펼쳐진다. 벼룩시장 운영주체는 ‘세종시첫마을공동체’. 지난 2012년 공동체 모임을 통해 벼룩시장을 처음 개설하고 지금까지 이끌어온 주인공이 바로 김형관씨(48)다.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한국수력원자력(주) 연구원인 그가 아이들에게 공동체 구성원으로 특별한 경험을 쌓도록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 벌써 6년째다.

- ‘첫마을공동체’란 모임을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습니까?

"2011년 연말에 대전에서 네 식구가 이사왔어요. 처음 집장만 해서 온 건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더라구요. 추운 날씨에 외출할 곳도 마땅치 않고, 주말에는 하루 종일 애들하고 집에만 있었어요. 답답했죠.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 ‘첫마을입주예정자 카페’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의견을 나눴어요. 아이들만이라도 먼저 친구를 사귈 수 있도록 해보자고. 누군가 ‘아파트 빈 공간을 잠시 빌려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보자’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당시 1단지 경로당이 비어 있어 그곳을 임시실내놀이방으로 만들자고 했죠. 근처 은행지점을 찾아가 이런 일 하려고 하니까 좀 도와 달라 부탁드려 장판, 놀이기구, 책을 지원받았죠. 그걸 펼쳐 놓으니까 주민들이 풍선 장식도 해주고 책장, 장난감, 책을 더 넣어줬어요"

- 서로에게  힘이 되셨겠네요?

"감동 받았죠. 주변에서 관심 갖고 풍성하게 꾸며줘서. 사실 그 정도만 하고 말 생각이었는데 교실을 운영해보자는 의견이 또 나왔어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아직 없을 때였으니까. 카페에 공지했더니 초등학교 선생님을 포함해 여섯 분이 도움을 주시겠다고 해요. 60명 정도 계획했는데 120명이 신청했어요. 어린이집 과정부터 초등학교 3,4학년까지 가르칠 수 있는 규모가 됐어요. 그냥 진행하기에는 좀 심심할 것 같아 ‘배움과 놀이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지요"

- 벼룩시장도 이때부터 하셨나요?

"이때 여러 가지 일을 기획했죠. 그 방에서 영화나 뮤지컬도 보고. 음악회를 해보자해서 봄에 참샘초 잔디밭 광장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성대하게 했죠. 세종유스오케스트라 양소영 단장님이 앞장서 주셨어요. 어린이합창단 공연, 사진 전시회도 하고. 그 때 알게 된 분이 공주에서 로컬푸드를 운영하셨는데 그분 덕분에 벼룩시장을 크게 하게 됐죠. 합강 캠핑, 보물찾기 등 놀이방 개설 이후 1년 동안 정신없이 일이 진행됐어요"

- 당시 '여름방학 체험학교' 반응이 좋았다죠?

"복합커뮤니티센터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돼 있잖아요. 아이들이 매일 그 앞을 오가는데 체험활동을 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119안전센터, 파출소, 주민센터에 직접 가서 구급차 타고, 소방차 물도 쏴보고, 경찰차로 마을 순찰도 했어요. 아이들이나 부모님들이 아주 만족해요. 병원, 은행, 자전거 가게로 영역을 넓혀갔지요. 재미도 있고 유익하고 무엇보다 돈 안들고 좋았죠"

-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과 추억을 주셨군요?

"개인적인 욕심은 제 두 아이에게 사회 공동체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싶었죠. 학교에서 잘 가르쳐 주지 않았을 것 같고 학원은 더더욱 아니고. 돈 주고 배우는 것도 아니잖아요. 마을 일에 아이들이 직접 참여해 몸으로 겪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 잘 따라 주던가요?

"처음에는 둘 다 잘해 줬는데 지나고 보니 짝사랑인 것 같아요.(웃음) 딸아이는 좋아해요. 딸과 친구들은 고정 멤버로 참여해서 와플도 굽고 자원봉사로 돕고 있어요. 큰 아들은 요즘 바빠서 그런지 별로. 중 2땐가 한번 얘기해요. 일주일 내내 학교 생활했는데 주말은 내 시간 좀 갖고 싶다고. 저 어렸을 적엔 아버님 일 돕겠다고 따라다니고 심부름하는 거 좋아했어요. 제가 동네 아이들과 제일 친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3월초 벼룩시장에 바람개비 봉사단 아이들이 모두 나와 도와줬어요. 고맙게 생각하죠"

- 공동체 로고가 바람개비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첫마을아파트 단지 구조가 바람개비를 모티브를 해서 만들어졌다고 해요. 실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1단지부터 7단지까지 바람개비 모양으로 펼쳐져 있죠. 설계 당시 바람개비 마을로 이름 지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청소년 봉사동아리 이름도 ‘바람개비 봉사단’입니다"

- ‘첫마을공동체’란 명칭은 언제부터 쓰셨습니까?

"처음 모인 인원이 20명 정도 됩니다. 직업군이 다양하죠. 프로젝트 하나 기획하면 준비기간이 대부분 한 달 이상 소요돼요. 직장인이 많아 낮에는 문자로 회의하고, 저녁에 모여 밤 11시, 12시까지 의견 나누고, 또 다음날 문자회의하고 이런 식으로 진행했어요. 마을 아이들과 재미있게 해보자는 생각뿐이어서 마을공동체 개념이나 모임 이름도 없었죠. 그러다 음악회하고 사진전시회 열 무렵에 주최측 이름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 해서 ‘세종시첫마을공동체’라고 지었죠"

- 국내외적으로 참고한 롤모델이 있었나요?

"그런 거 없이 시작했어요. 아파트 생활하면 이웃과 교류할 기회가 거의 없잖아요. 예전에 시골 마을을 보면 동네 어귀에 정자나무가 있고 쉼터나 조그마한 마당 같은 게 있어서 마을 어른들이 거기 모여 세상얘기, 개인 얘기 나누시잖아요. 저는 그런 기능을 하는 마을 광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지금의 벼룩시장이라고 봐요. 물론 생각보다 썩 훌륭하게 운영되거나 모양 좋게 나온 것은 아니지만 친구를 많이 사귀게 됐지요. 이게 목적이 아닌가 싶어요. (이춘희)시장님께 ‘도심형마을공동체’를 제대로 만들어 보자고 건의도 드렸어요. 사실 벤치마킹 해야 한다면서 시의원이나 공무원들이 국내외 견학도 다닌다고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우선 우리 마을부터 자세히 살피고 활성화할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우리 것을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다른 곳에서 견학올 거 아닙니까?"

- 세종시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던가요?

"딱 한번 500만원 받았습니다. 와플기계, 천막을 비롯해 현재 사용하는 벼룩시장 장비 대부분을 그때 마련했죠. 그런데 관에 의지하기보다 어떻게든 자생적으로 돌아가는 공동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더 이상 요청하지 않았어요. 벼룩시장 1년 예산이 100만원입니다. 굉장히 알뜰하게 운영해요. 와플 재료사고, 봉사하는 학생들 간식도 주고, 교통비로 가끔 쓰고, 전기료까지 내요. 100만원으로 우리 마을이 1년 동안 축제 벌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에요?"

- 개인 소개를 해 주시죠?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고등학교와 대학을 광주에서 다녔어요. 전기공학과 출신인데 졸업 후 한전에 입사해 영광, 고리에서 근무하다 2003년 대전으로 발령받아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습니다. 세종에 오기 전까지 대전 유성구 노은동에서 살았어요"

- 직장생활도 바쁘실 텐데 여유가 있었나요?

"취미생활의 연장이다 생각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재미있으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게 ‘일이다’했으면 초기에 그만 뒀을 거예요. 아내가 엄청 눈총줬지만 제일 많이 도와주는 사람도 집사람입니다. 적당히 타협 본 게 한 달에 두 번, 첫째 셋째 주말이죠"

- 벼룩시장 열리면 몇 분이나 참여하세요?

"사실 그게 가늠이 잘 안돼요. 많이 오면 500여명도 오시고, 어 느 때는 아주 단출해요. 올해 자동차 3사와 차량정비서비스 지원을 논의했는데 얼마나 호응이 있을지 몰라 아직 최종적으로 확정하지 못했어요"

- 세종시 이주를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처음 집장만 한 거예요. 대전 관평, 도안, 노은 3지구 다 검토하고 마지막에 세종으로 결정했지요. 세종시 건설 배경 의미도 마음에 들었어요. 분양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했고 운 좋게 큰 평수를 얻었죠. 아이들 데리고 공사 중인 세종시에 자주 놀러 왔어요. 머릿속에 완성된 세종시 이미지를 그렸죠. 아내에게 ‘세종시는 국가가 계획을 세워 건설하는 도시다. 일반 신도시와는 다르다’고 열심히 설명해 줬죠. 한편으로는 조감도 보면서도 ‘정말 이렇게 될까’라는 의구심이 있었지만"(웃음)

- 세종시에서 개인적으로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

"많이 유연해졌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실 평범하다 못해 사람 사귀는데도 쉽지 않은 성격인데 세종 와서 어쩌다 사람과 부대끼는 일을 하고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없을 정도로 일 벌려 놓고. 한마디로 인생 전환을 한 셈이죠"

- '첫마을공동체’를 어떻게 꾸려갈 생각이십니까?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모임 멤버들이 많지는 않아요. 유일한 끈이 카톡방 하나인데 15분 정도 계시고 실제 참여하시는 분은 이보다 적은 편이죠. 그렇지만 공동체를 믿고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고 여러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분들도 많아요. 다 고마운 분들이죠. 욕심은 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벼룩시장 하나 잡고 있는 형편이에요. 이거라도 이어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각오로 하고 있고 도심형 공동체의 성공사례로 만들고 싶은 간절함이 있어요. 주변에서 조금의 성의만 표시한다면 아이들이나 나중에 오는 분들에게 좋은 모습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 모임 운영이 쉽지 않군요?

"생각보다 힘들어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어떻게 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공동체를 협동조합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서로 입장이 달라 모임 자체가 반쪽나다시피했던 아픔이 있었죠. 이걸 푸는데 거의 3년 걸린 것 같아요. 공동체를 지향하는 모임에서 20명도 안 되는 마음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면 체면도 명분도 안 서는 것 같았어요. 우리 모토가 ‘천천히 느리게’입니다. 서두르지 말자고 늘 다짐하는데도 말을 나누다 보면 의도하지 않게 마음 상하는 일이 생겨요"

- 주민들에게 격려도 받지만 오해도 많았겠어요?

"초기에 ‘진행을 잘 못한다’, ‘왜 대낮에 동네 시끄럽게 하느냐’ 하는 말 듣고 상처 받았어요. 그림그리기 대회 때 사전에 딱 200명만 선착순 접수로 진행한다고 충분히 고지했는데도 당일에 와서 '왜 우리 아이 안 받아주냐'며 면박을 주시는 분이 계셨어요. 낮에 열린 음악회에 불만 터뜨리신 주민에게 '아침이나 밤에 할까요?'라고 대꾸하고 싶어도 꾹 참고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라고 해요. 뭐랄까 아주 정치적인(?) 말을 자연스럽게 해요. 제가 평소 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점에 대해서는 끝까지 상대해서 싸우는데 마을 분들하고는 아무리 옳다고 믿어도 끝까지 고집을 못 부리겠어요"(웃음)

- 세종에 살면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역에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야할 이슈가 많은데 시민의 여론이랄까 의견이 모아지는 과정에 아쉬움이 있어요. 현재는 주로 온라인을 통해 만들어지고 그룹 리더들에 의해 주도되는 것 같은데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고... 어느 지점에서는 자본에 휘둘리는 느낌도 들어요. 좀더 투명하고 직접적으로 여론형성에 참여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공동체 벼룩시장에서 길거리 특강, 길거리 토론 등 여러 시도를 하고 있는데 저는 그걸 '아고라'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자유 발언대를 만들어 주장과 반론을 주고받으면서 우리 마을의 견을 모으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 앞으로 무엇을 더 하고 싶으십니까?

"벼룩시장을 특색 있게 진행했으면 해요. ‘글로벌 프리마켓’ 이라고 외국에서 오신 분들이 많은데 우리와 같이 공동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 또, 외국 공동체와 협력해 방학 때 아이들을 교환방문 형식으로 상대국 일반 가정집에 머물게 하면서 문화체험을 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것 같지 않나요? ‘마을학교’를 세종시만의 고유 브랜드로 발전시키고 싶은 뜻도 이미 교육청에 전해 드렸고. 무엇보다 올해 제가 행복도시 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는데 주민자치위원회를 활성화해 세종시 도심형공동체 기틀을 만들어가는 한해가 되길 바래요. 주민자치 프로그램에 한정만 하지 말고 조금 더 큰 결정도 내릴 수 있도록 위상이 강화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 끝으로 시민들께 드릴 말씀이 있다면?

"저 스스로 세종시 전도사라고 합니다. 직장에서 직접적으로 다섯 집 정도 세종시로 이사오게 만들었고, 동료 중에 세종시 주택 소유자만 스무 명이 넘어요. 사실 오늘 낮에 저희 부모님이 집보러 오셨어요. 어렵게 작은 평수 아파트 분양 받아 부모님과 가까이 있으려고 해요. 장남인데 마냥 멀리 있는 게 불편하더라구요. 무엇보다 우리 마을을 위해 힘과 마음을 보태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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