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초등생 상해 의심 사건, 기관 간 공조체계 미흡과 메시지 관리 실패
학교 측, 경찰과 CCTV 확인 후에도 '외부침입 사건' 문자 일방 발송
교육청 한 술 더 떠, '해프닝'가능성 언론기사 이후에도 보도자료 내 혼란 가중

지난 15일 세종시 한 초등학생 상해 의심 사건 처리과정에서 학교와 교육청, 경찰의 공조체계 미흡과  메시지 관리 실패로 혼란이 가중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5일 세종시 한 초등학생 상해 의심 사건 처리과정에서 학교와 교육청, 경찰의 공조체계 미흡과 메시지 관리 실패로 혼란이 가중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육청 조직은 유능합니다“

지난 18일 오후 퇴근 시간을 한 시간 정도 남겨둔 세종시교육청 안전담당자의 말이다. 최근 세종시를 떠들썩하게 만든 ’대낮 괴한 침입 초등학생 상해 사건‘을 대응하는 학교와 교육청에 문제점이 없었는지 묻는 기자에게 담당자는 자신 있게 조직의 ’유능함‘을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

사건이 발생했다는 시간은 15일 낮 12시 50분경, 학교 교감이 경찰 지구대에 신고한 시간은 오후 1시 31분. 6학년 남학생이 2층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5층 교실로 가던 중 계단에서 갑자기 나타난 20대 남성이 흉기(커터칼로 알려짐)를 휘둘러 팔에 상처를 입히고 도주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진1) 15일 오후 2시 53분경 세종시 한 초등학교 학부모들에게 발송된 최초 문자메시지

경찰이 즉각 출동해 현장조사를 벌이고 피해 학생 진술도 확보했다.

학교 측은 사건 발생 2시간 뒤인 오후 2시 53분경 전체 학부모에게 ‘외부인의 교내 출입으로 인하여 6학년 학생이 상해를 입는 일이 발생했다’고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사진 1)

메시지 마지막에는 ‘앞으로 학생들의 안전을 위하여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제한하고자 하오니 학부모님들의 많은 협조 부탁드린다’는 당부의 말도 남겼다. 외부인에 의한 상해 사건은 기정사실화됐다.

이 문자는 학부모뿐만 아니라 언론사와 지역 인터넷카페, SNS상에 그대로 복사돼 퍼졌다. 오후 내내 세종시 전체가 들썩였다. 전국 뉴스에 속보로도 전해졌다. 그러나 늦은 저녁에는 경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해프닝’가능성이 언론에 보도됐다. (사진 2)

(사진 2) <연합뉴스>는 15일 저녁 경찰 관계자 말을 인용해 '해프닝'가능성을 보도했다. (연합뉴스 화면 갈무리)

16일 아침 기자는 해당 학교를 찾아 의문점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최초신고자는 피해 학생이 아닌 같은 학급 친구들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당해 누구보다도 놀랐을, 더구나 상처를 입은 해당 아이가 아니었다. 일찍 식사를 마치고 교실에 돌아와 앉아 있던 학생의 팔에 난 상처를 본 친구들이 서둘러 담임에게 신고하면서 일이 시작됐다. 학교에는 54대의 카메라가 설치돼 있는데도 피해 학생이 진술한 ‘파란 모자, 검은색 티와 바지, 마스크’를 착용한 ‘괴한’은 녹화영상 어느 곳에서도 등장하지 않았다고 했다. 카메라는 모두 정상작동 중이었다. 당시 800명 가까운 학생과 선생님들이 학교 건물 안팎에 있었다. 현재까지 목격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긴 소매의 겉옷을 입었다면 옷에 칼이 스친 자국이 남아야 한다. 피를 흘렸다면 옷에 혈흔이 있어야 한다. 학생 팔에 난 상처 모양과 횟수, 길이와 깊이를 보면 어느 정도의 긴박한 상황인지 바로 추정할 수 있다. 경찰은 이런 일을 수도 없이 처리해 왔다.

학생이 2층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와 5층 교실 안에 들어간 1~2분 남짓한 시간의 동선 영상에서는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학생도 뛰거나 소리쳐 구조를 요청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너무 당황했고, 또 실제 피해가 적었기 때문에 굳이 신고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설혹 친구들의 성급한 관심과 추궁에 얼떨결에 둘러댄 이야기일 가능성도 있다. 그 또래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정도는 가정과 학교, 지역 사회에서 얼마든지 포용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아이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15일 낮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학교, 교육청 관계자들은 이러한 정황을 오후 2시 53분 학교장 명의의 문자발송 이전에 대부분 인지했다. 일반적으로 CCTV가 있는 장소라면 사건 발생 현장의 외부인 침입과 도주 여부는 5~10분이면 충분히 확인하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외부인 출입에 의한 상해 사건’으로 학부모들에게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다. 이후 혼란과 파장은 익히 들은 대로다. 학교 측은 문자 내용과 발송 결정을 경찰과 상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학생의 진술이 일관되고 인상착의가 구체적이어서 ‘외부침입 괴한’이라는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고 했다. 경찰에서 유감을 표시했고, 이후 사건 발표는 세종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일원화하기로 학교와 교육청, 경찰이 합의했다.

사실 첫 문자부터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괄적인 의미의 메시지가 나갔어야 했다. 경찰과도 긴밀히 상의했어야 했다. 열 가지 가능성 중 가장 희박한 가능성을 강조하기보다 모든 가능성을 아우를 수 있는 메시지를 내놨어야 했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에 대응하는 일은 학교와 교육청, 경찰의 몫이다.

교육청은 학교 측의 첫 조치가 적절했다는 판단을 다음 날 내놨다. 과연 그럴까? 첫 번째 위기대응 실패다.

교육청 보도자료 내 혼란 가중

16일 아침 등굣길에 만난 학부모 중 일부는 이미 ‘해프닝’ 보도를 알고 있었다. 

이날 오후, 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세종시교육청은 오후 4시 7분경 보도자료를 각 언론에 보냈다. (사진 3)

(사진 3) 16일 오후 세종시교육청이 발표한 보도자료. 외부인 침입 사실을 전제한 뒤  중간에 특이사항이 없다고 했다. 
 

첫 문장에 ‘세종시교육청은 최근 발생한 외부인에 의한 관내 초등학교 안전사고와 관련해 학교 경계 및 안전관리를 더욱 강화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에는 최교진 교육감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외부인 출입관리 등 학교 안전현황을 철저하게 점검할 계획”이라며 학부모의 협조와 관심을 부탁드린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이미 어제 현장에서는 아이의 진술에 많은 의문을 표했고, 외부침입 흔적은 없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 말을 인용한 ‘해프닝 가능성’ 보도도 나간 상황이다.

하지만, 교육청은 ‘외부인 침입’을  단정적으로 전제하고 이를 반복해 서술했다. 보도자료 중간에 ‘외부인 침입에 대한 특이사항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으나 보도문 전체에 세 차례나 외부인 침입을 언급했다.

사건의 방향 전환시도는커녕 엉뚱하게도 외부인 출입관리 강화를 강조함으로써 의문을 남겼다. 이 때문에 전날 해프닝 가능성을 보도한 언론도 이 문장과 교육청 입장을 그대로 쓸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이날부터는 ‘외부인 침입에 의한 학생 상해 사건’을 ‘학생 상해 사건’ 또는 ‘상해로 의심되는 사건’ 정도로 확인된 사실에만 집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사건 당일 현장에서부터 설득력을 잃은 외부인 침입을 왜 그렇게 확정적으로 반복했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이를 교육청 SNS홍보담당자는 지역 인터넷카페에 퍼뜨려 혼란을 더했다. (사진 4)

(사진 4) 세종시교육청 SNS담당자는 교육청 보도자료를 인용한 기사를 인터넷카페에 퍼날랐다. 화면 하단에 한 카페 회원이 '다른 이야기가 돌던데'라며 댓글을 달았다. 

한 학부모는 이날 "교육청 발표로 보고 내가 들은 얘기와 다른게 있나 싶었다. 진상이 무엇인지 더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교육청 스스로 새로운 또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만일에’라는 가정을 한다면 학생이 열린 마음으로 접근할 가능성을 더욱 축소했고, 그가 극복할 수 있는 갈등의 장벽을 교육청이 더 높이 올렸을 뿐이다. 학교와 교육청 대응에 잘못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이 보도자료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말 아이를 생각했다면 문자메시지나 보도자료에서 사건을 기술하는 첫 문장부터 달라졌어야 했다. 학교나 교육청 어느 곳에서도 그런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돌이키기 어려운 위기대응 두 번째 실패라고 보는 이유다. 

(사진 5) 학교장의 중간 조사결과 안내 문자. 내용만 보면 외부인이 아닌 내부인에 의한 상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학교 문자는 도리어 내부인 의혹만 추가

다음날인 17일 오후 5시경 학교 측은 ‘중간조사 사항 안내’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학부모들에게 보냈다. (사진 5) 이 문자는 경찰과 논의를 거친 것이라고 한다.

내용만 보면 학생 상해는 외부침입자가 아니라 내부자 소행이라는 의심만 가중했다. 더 폭넓게 볼수 있는 가능성을 어디서도 읽을 수 없다. 

당장 이 문자메시지를 인용한 언론기사를 SNS상에 퍼뜨리는 교육청 홍보담당자 글에 ‘그럼 누가 그런 건가요? 재학생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과연 이런 메시지가 온당한 것인지, 논란거리를 제공하는 주범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수사결과 발표도 수사과장으로 일원화한다고 해놓고 학교가 총대를 메게 했다. 경찰은 학교 뒤에 숨었다. 무책임하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결국, 나머지는 학부모들이 알아서 해석하라는 격이다.

학교와 교육청, 경찰이 머리를 맞댄 결론이 이 정도라면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다.

학부모와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힘든 위기대응 세 번째 실패라고 생각한다.

잇따른 교육청 위기 관리 실패, 신뢰 하락 자초

기자는 16일과 17일 이틀간 해당 학생과 학부모를 제외한 상당수 인물을 취재했다. 기사를 써 놓고도 이틀간 고민하고 고쳐 쓴 글이 18일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취재수첩이다. (http://www.magazinesj.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25)

최교진 세종교육청은 올해 초 고입배정 오류 참사를 냈다. 안일한 대응과 원칙 없는 결정이 빚은 위기관리 실패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교육청의 오락가락 행정으로 피해를 당했다는 한 학부모는 지금도 적개심에 가까운 분노를 표출한다. 지역의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당시 최 교육감 지지율이 두 달 사이 41.7%에서 25.3%로 16%가량 하락했다.

한두 번의 실수는 실수로 넘어가지만, 반복되면 그게 본래의 실력이 된다. 조직의 가장 큰 위기는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했다. 바로 ‘신뢰의 위기’다.

이번 사건에서 교육청 안전담당자가 말하는 ‘조직 유능함’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는 유능함만은 아니길 바란다. 그 대가로 학생과 학부모, 세종시민들이 겪는 고통과 피해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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