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정신건강복지센터 주최 제1회 자살예방토론회
100여명 참여, 19개 소주제 그룹미팅
노년 고독, "요양보호사가 자식보다 더 반가워"
"학생들, 스마트폰과 유튜브 시청 늘면서 대화 더 줄어"
"학교는 '가정'이 문제, 가정은 '학교'교육이 문제" 공방도 지적
세종시만의 특수 여건 고려한 예방대책 마련 시급
세종시 최근 5년간 한해 평균 42.6명 자살

오픈스페이스 코리아 서지희 대표가 자살예방토론회 진행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오픈스페이스 코리아 서지희 대표가 자살예방토론회 진행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 기자의 자살예방토론회 참가기 -

“아쉬운 점은 청소년층이 없다는 점입니다. 오늘 토론회에는 12가지 키워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소통, 공감, 대화, 가족, 도움, 인사, 정서, 보호, 건강, 생활고, 고민, 가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약 2시간 30분 토론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한 참석자가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랬다. 이날 ‘자살 예방’ 관련 19개 소주제 토론에서 오간 많은 발언을 정리하면 위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중앙심리부검센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세종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모두 213명. 한 해 평균 42.6명이다. 정신건강문제가 43.2%로 가장 많았고, 경제문제 18.8%, 신체건강문제는 14.1% 순이었다.

세종시 특성상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이날 토론회는 오히려 때늦은 감도 있다.   

5일 오후 1시 30분부터 세종컨벤션센터 1층 중회의실에서 열린 세종시정신건강복지센터(센터장 김현진) 주최 제1회 자살예방토론회에는 100여명의 관련 기관단체 직원과 시민이 참석했다. 취재를 위해 방청 신청을 낸 기자는 아예 토론 모임에 참여했다.  

토론회 주제는 ‘위기의 세종시 자살률, 세종시민에게 묻다’. 책상은 모두 치웠다. 회의실 중앙에 둥근 원모양으로 사람 수만큼 의자를 배치했다. 주제발표에 이은 전문가 토론과 방청객 질의응답 순서는 없었다. 100여 명에 이르는 참석자가 모두 토론자로 변했다. 새로운 경험이다.

자살예방토론회 토론모습
자살예방토론회 토론모습

사회를 본 오픈스페이스 코리아 서지희 대표는 참석자들에게 토론하고 싶은 소주제를 제안하도록 유도했다. 19개 소주제가 제안됐다.

소통하는 방법, 유가족과 함께하기, 소외된 이웃 발굴하는 방법, 건강한 가정의 회복, 군 자살 예방 등 다양한 갈래의 토론주제가 나왔다.

소주제를 제안한 사람을 중심으로 나머지 참석자들이 팀을 만들었다. 100여 명이 우선 10개 주제별로 팀을 나눠 첫 세션에서  50분 가량 토론한 뒤, 잠시 쉬었다가 두번째 세션에서 다시 9개 팀으로  토론을 벌였다. 10개의 원과 9개의 원이 번갈아 만들어졌다.

기자도 두 번의 토론에 모두 참여했다. 먼저 어르신들이 주로 모인 노인 자살예방 토론팀.

'가족 없는 노인의 고독’이 첫 번째로 거론됐다. 읍면 지역과 신도시를 막론하고 빈곤과 건강문제, 고독이 노년을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에 공감이 많았다.

신도시에서 노인문화센터 책임자로 일하는 분이 들려준 세종시 거주 어르신들의 특징 설명에는 모두가 귀를 세웠다. 부부공무원인 아들과 며느리를 따라 세종으로 이주해 손주보는 어르신, 한 단지내에 살면서도 어울리지 못하는 어르신들 얘기가 이어졌다.  

‘낮보다 밤이 더 서럽고, 정기적으로 집을 찾아오는 방문요양사가 자식보다 더 반갑다’는 사연도 나왔다. 농어촌공사, 농업기술센터, 우체국 집배원, 마을 이장이나 통장을 활용해 노인세대 안부를 확인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토론회 내용을 요약 게시해 모든 참석자들이 볼 수 있게 했다.
토론회 내용을 요약 게시해 모든 참석자들이 볼 수 있게 했다.

두 번째는 청소년 자살예방 토론팀이었다. 한 참석자가 자식이 학교폭력을 당하고 난 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풀어놨다. 피해 학생과 학교에서는 ‘폭력’이라고 하는데 가해자 부모는 아이들끼리 흔히 하는 ‘장난’이라고 한단다. 피해자 가족은 학교내 ‘학폭위’운영 체계에 더 많은 상처를 받는다고 토로했다.

소위 ‘사건’이 일어나면 그때부터 지옥이다. 초,중,고교를 가해 학생과 한 생활권에서 지내야하는 아이와 부모가 겪는 정신적인 고통은 끔찍하다. 초등 폭력은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군대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다른 토론자는 아이들 사이에 스마트폰 게임과 유튜브 사용 시간이 늘면서 범죄와 폭력 모방뿐만 아니라 죄의식도 무디어져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예전에는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님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형제자매들까지 혼냈는데 지금은 제대로 혼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가정에 어른이 없고, 꾸짖는 부모가 없으니 아이들은 점점 더 무엇이 잘못된 일이지 분간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까지 했다.

학교는 ‘가정’에서 잘 가르쳐야 한다고 하고, 가정은 ‘학교’ 교육이 잘못됐다고 서로 책임을 떠넘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과 직장에서 자살 예방 관련 교육이 늘어나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가정과 직장 내에서의 소통과 공감, 인권의식을 높일 수 있는 대책 요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대화’였다, 진심으로 깊이 있는 대화를 할 때 평소 잘 보지 못한 많은 문제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대화하는 방법을 모르는 어른과 아이가 주변에 의외로 많다고 했다.

토론 내용은 A4용지 한 두 장에 요약돼 벽에 게시됐다. 다른 토론팀 참석자들이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사전에 충분한 예고 없이 진행했음에도 토론 참여 열기는 높았고 많은 대화도 오갔다.

이런 점에서 이날 토론회는 성공적으로 보였다.

토론회에는 세종시청과 교육청, 관련 단체 직원, 군인 등 100여명이  참여했다. 

반면에 아쉬움도 많았다.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그룹 토론을 하니 발언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장시간의 토론 내용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팀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행사를 주최한 정신보건센터는 물론 시청, 교육청, 관련 단체 직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군인도 13명이 참가했다. 세종시민이라고 서명한 사람은 불과 5명이었다. 한 참석자가 지적한 대로 청소년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직원 직무역량 강화 모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토론회 결론은 새로울 것도 없다. 부모와 자녀 또는 상사와 부하의 소통 부재, 동기간 왕따, 노인 고독, 빈곤과 건강문제 등 이미 유사한 사례 연구나 실제 자살 유형에서 다 드러난 것이다.

어쩌면 세종시만의 특수한 사례가 더 필요할 수 있다.  고위직 부부공무원을 따라 세종시로 이사 온 노인 부모의 소외감, 신생 학교 부적응 학생, 맞벌이 부부의 자녀와의 대화 부재, 아파트 내 이웃 관계 단절 등. 하지만 이런 내용은 기록에 다 남지 않았고 충분히 수집되지도 못했다.  

정신건강센터는 이날 토론회 내용을 분석해 내년도에 시행할 자살 예방사업에 반영한다고 했다. 지난해 심포지엄에 이어 올해는 토론회, 그리고 내년에 본격 사업 시행한다는 설명에는 실망감이 밀려왔다. 2년 이상 비슷한 일회성 행사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살 위기에 놓인 시민들은 그만큼 돌봄 기회를 놓치고 있다.

센터는 올해만도 벌써 5번의 인력채용 공고를 냈다. 그만큼 조직체계나 안정이 미흡하다는 반증이다. 

이날 가장 심각하게 다가온 문제는 알게 모르게 우울감과 소외감 등 정신적 고통을 겪는 세종시민과 청소년이 예상 밖으로 많다는 토론 참가자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화려한 외양 속에 감춰진 골병드는 세종시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뒤끝은 영 개운치 않았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종시정신건강복지센터 044-861-852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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